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폴레옹 3세 (문단 편집) == 출생의 비밀? == 한때 나폴레옹 3세가 [[루이 보나파르트]]의 아들이 아니라, 나폴레옹 1세의 의붓딸 [[오르탕스 드 보아르네|오르탕스]]가 [[불륜]]을 해서 낳은 '''[[혼외자]]'''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. 이는 이미 19세기 당대에도 [[빅토르 위고]] 등 많은 정적들이 제기해온 뿌리 깊은 의혹이었다. 애초부터 [[루이 보나파르트|루이]]와 [[오르탕스 드 보아르네|오르탕스]]는 사이가 나빴는데, 오르탕스의 [[어머니]] [[조제핀 드 보아르네|조제핀]]의 불안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억지로 [[정략결혼]]했기 때문에[* 조제핀은 남편 나폴레옹의 어머니 및 형제자매들과 사이가 나쁜데다가 나폴레옹의 후계자를 출산하지 못했기 때문에, 황후로서 입지가 탄탄하지 못했다. 그래서 나폴레옹이 동생 루이와 조제핀의 딸 오르탕스를 결혼시켜 태어난 아이를 나폴레옹의 후계자로 삼는다면 나폴레옹의 핏줄도 방계로나마 이어지고, 동시에 조제핀의 외손자가 나폴레옹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면 조제핀의 위상도 굳건해진다.], 이들 [[부부]]의 관계는 누가 보더라도 소원했다. 거기에 [[루이 보나파르트|루이]]는 사실 [[동성애자]]이며 [[오르탕스 드 보아르네|오르탕스]]도 공공연히 [[바람(관계)|바람]]을 피운다는 설이 나돌면서 의혹을 부채질했다. 이것이 확대되면서 나폴레옹 3세 혼외자 설로 번진 것이다. 결국 루이-오르탕스 부부는 이로 인해 사이가 더욱 나빠져서 끝내 파경을 맞게 된다.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혼외자설이 근거 없는 악의적인 비방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. [[루이 보나파르트]]와 [[오르탕스 드 보아르네|오르탕스]]는 자식을 얻기 위한 억지스러운 부부 관계를 이어갔기 때문에, 임신을 위해 둘이 동거한 시기를 각종 기록으로부터 재구성할 수 있다. 둘 사이에는 이미 1802년에 첫째 아들 나폴레옹 루이 샤를 보나파르트(Napoléon Louis Charles Bonaparte), 1804년에 둘째 아들 나폴레옹-루이 보나파르트(Napoléon-Louis Bonaparte)를 낳아 의무(?)를 다한 상태였기에 당초에는 자식을 더 낳을 의도가 없었다. 하지만 1807년 5월에 첫째 아들이 [[급성폐쇄성후두염|크룹]](후두기관기관지염)으로 5살의 어린 나이에 사망하자, 만일을 위해 자식을 한 명 더 갖기로 마음을 바꾼다. 이에 셋째 자식을 갖기 위한 목적으로 1807년 8월부터 임신할 때까지 다시 동거하게 된다.[* 후사를 잇는다는 측면에서 이는 결과적으로 적절한 선택이었다. 둘째 나폴레옹-루이도 불과 26세이던 [[1831년]]에 [[홍역]]으로 요절하고 만다.] 나폴레옹 3세가 태어난 [[1808년]] [[4월 20일]]로부터 역산해보면, 임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둘이 한창 동거 중이던 때가 잘 들어맞는다. 이런 의도적인 동거 시기에까지 무리하여 바람을 피울 가능성은 극히 낮기 때문에, 나폴레옹 3세는 [[루이 보나파르트]]와 [[오르탕스 드 보아르네|오르탕스]]의 아들임이 확실하다는 이야기이다.[* 오르탕스에게는 이혼한 후에 애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'''공인된''' [[사생아]] 샤를 드 모니가 있었으며, 이 경우 오르탕스는 아이를 하급 장교의 성을 따 만든 가짜 호적에 올리고 유급 양부모에게 넘겼지 억지로 루이의 아들로 만들지 않았다.] 그런데 2010년대 들어 유전학적 연구를 통해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 혼외자설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. 프랑스 유전인류학 연구소에 재직하는 제라르 루코트(Gérard Lucotte) 박사가 나폴레옹 1세의 머리카락에서 추출한 Y-DNA를 분석한 [[http://www.ccsenet.org/journal/index.php/jmbr/article/download/10609/9658|연구]]에 의하면, 나폴레옹의 Y염색체 DNA는 [[하플로그룹]] E1b1b1c1(E-M34)에 속한다. 이후 루코트 박사가 후속 작업으로 나폴레옹의 막내 동생 [[제롬 보나파르트|제롬]]의 후손들을 분석한 [[http://www.ccsenet.org/journal/index.php/jmbr/article/download/40064/23773|연구]]가 보강되면서 보나파르트 집안 남자들의 Y염색체 DNA는 [[하플로그룹]] E1b1b에 속해 있음이 밝혀졌다.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폴레옹 3세의 아들인 루이 외젠 보나파르트의 유해에서 채취한 머리카락과 기타 혼외자 후손에서 채취한 DNA 분석에 의하면 이들은 다른 [[하플로그룹]] I2a2a에 속한다. 이는 나폴레옹 1세와 나폴레옹 3세가 적어도 '''[[탁란|부계 쪽으로는 친족 관계가 아님]]'''을 시사한다. 이러한 유전학적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대략 세 가지 설명이 존재한다. 첫째, 19세기 당대에 반대파들이 공격하던 대로 '''나폴레옹 3세는 [[오르탕스 드 보아르네|오르탕스]]가 [[외도]]를 통해 낳은 혼외자'''라는 설명이다. 좀 더 구체적으로는 별거 이후 [[네토라레|애인이기도 했던 샤를 드플라오[* [[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|탈레랑]]의 사생아이기도 했다.](Charles Joseph de Flahaut) 백작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라는 주장이 있다.]] [[오르탕스 드 보아르네|오르탕스]]와 플라오 백작 사이에서 태어난게 확실한 샤를 드 모르니[* 모르니 공작]와 닮았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되고는 한다. 그러나 이를 부정하는 기존 역사학계의 연구 결과도 만만치 않아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. 둘째, 나폴레옹 3세가 [[루이 보나파르트|루이]]와 [[오르탕스 드 보아르네|오르탕스]]의 아들이나, 오히려 '''[[루이 보나파르트]]가 [[나폴레옹 1세]]의 [[이부형제]]'''였다는 설명이다. 외도한 사람이 어머니 [[오르탕스 드 보아르네|오르탕스]]가 아니라 할머니 레티치아 보나파르트[* [[나폴레옹 보나파르트]]의 어머니]라는 이야기이다. 레티치아가 [[코르시카]]에 살던 시절에, 코르시카에 주둔하던 프랑스군 장교들과 교분이 깊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적지 않게 떠돌던 풍설이기도 했다. 이 설은 나폴레옹 1세와 3세의 Y염색체 DNA가 다른 [[하플로그룹]]에 속하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설명되며, 나폴레옹 3세의 출생을 둘러싼 역사학계의 연구와도 배치되지 않는다. 또한 이 경우 '''[[거짓말은 하지 않았다|나폴레옹 3세가 나폴레옹 1세의 조카라는 사실도 유효]]'''하다. 나폴레옹 1세와 루이가 모계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이다. 이런 점들 때문에 첫째 설명에 비해 조금 더 많은 지지를 받고 몇몇 프랑스 현지의 [[https://www.amazon.fr/gp/product/2262072876|서적]]과 [[https://www.atlantico.fr/decryptage/3294770/et-si-napoleon-iii-n-etait-pas-le-neveu-de-l-illustre-empereur-|언론기사]]를 통해 공개적으로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. 그러나 아버지 [[루이 보나파르트]]의 DNA 검사가 아직 이뤄지지 못한데다가, 할머니인 레티치아 보나파르트의 외도 사실을 확인할 다른 방법도 없어 전반적으로는 흥미로운 가설 정도로 치부되는 상황이다. 셋째, '''루코트 박사의 분석을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'''는 설명이다. 주로 연구에 활용한 나폴레옹 3세 친족들의 유해 시료가 불완전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. 관련 문헌에도 나오지만 이 연구에서는 사망 직후 유해에서 채취해서 박물관,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는 체모, 모발 등을 이용했다. 그러나 나폴레옹 3세 본인 및 아들의 유체 시료는 출처도 불분명하고 상태도 좋지 않다. 이 때문에 나폴레옹 3세의 [[하플로그룹]] 분석 결과는 공인된 학술저널에 실리지도 못했다. 이를 명확하게 확인하려면 [[루이 보나파르트]] 및 나폴레옹 3세의 관을 열고 보다 확실한 DNA 시료를 채취해야겠으나, 이를 원하는 정당한 이해관계자나 역사적 필요성이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러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성을 가지기 힘들다.[* 비슷한 케이스로 [[앨버트 공]]이랑 [[바덴의 체칠리에]]도 있다.] 나폴레옹 3세의 [[출생의 비밀]]은 여전히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나, 오늘날에 와서는 입증할 자료도 부족하고, 정밀한 자료를 원하는 관계자도 없는 상황이다. 보나파르트 가문 내외 모두 나폴레옹 3세를 보나파르트 가문의 일원으로 인지했으니,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없다. 그 아들인 [[나폴레옹 외젠 루이 장 조제프 보나파르트|나폴레옹 황태자]]가 만약 후사를 남겨 대를 이어 [[보나파르트 가문]]을 이었으면 훗날에라도 이 문제가 거론되어 [[친자확인]] 검사라도 시행할 수 있겠지만, 그가 독신인 채로 자식도 없이 [[아프리카]]의 [[줄루 전쟁|전쟁터]]에서 전사해서 가계가 단절됐으니, 논란의 여지도 완전히 사라졌다. 보나파르트 가문의 수장은 [[제롬 보나파르트]]의 후손이 잇고 있다. 여담으로 나폴레옹 3세의 황제 시절에 그의 숙부인 [[제롬 보나파르트]]가 그에게 "폐하께서는 나폴레옹 1세 폐하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."라고 놀리자, 나폴레옹 3세가 "숙부님, 그렇지 않습니다. 저 역시 그 분처럼 친척들에게 시달리고 있는걸요."라고 역관광시켰다는 일화가 있다.(...)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